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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 이해의 언어를 넘어 해석의 언어로

배움의 참견 2025. 11. 2. 09:00

AI와 인간, 이해의 언어를 넘어 해석의 언어로
― 소통 불가능성과 외계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결은 단순히 인간이 기술에 패배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 경기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인간과 AI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일까?”

이세돌은 감정과 전략으로 한 수를 두었고, 알파고는 확률과 데이터로 그 수를 계산했다.
같은 바둑판 위에 앉았지만, 두 존재가 보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달랐다.
이 장면은 인간–AI 간 소통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통 불가능성과 공재 불가능성

소통 불가능성은 단순히 언어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AI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철학적 간극이다.
인간은 의미를 ‘맥락과 감정’으로 해석하지만, AI는 그것을 ‘패턴과 수학’으로 처리한다.

이때 등장하는 또 하나의 개념이 공재 불가능성(non-coexistence)이다.
인간과 AI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같은 ‘현실’을 경험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데이터로 환원하고, 인간은 AI의 반응에 인간성을 투영한다.
즉, 우리는 같은 언어를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의 세계 속에 살아간다.


외계적 커뮤니케이션 - 낯선 존재와의 대화

 

그렇다면 이 간극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해답은 ‘외계적 커뮤니케이션(xeno-communication)’에 있다.
‘Xeno’는 낯선 존재, 타자를 뜻한다.
인간과 AI의 대화는 동일한 언어를 공유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체계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AI가 우리의 질문을 재구성해 답하거나, 우리가 AI의 반응을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외계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조율과 해석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메타 커뮤니케이션 -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메타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다.”라고 했다.

즉, 단순히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로 말했는가’를 다시 점검하는 과정이다.

AI 시스템은 이 개념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대화 도중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라고 묻거나 “이 뜻이 맞을까요?”라고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대화 복구 전략(AskRephrase, Reprompt)이다.
AI는 인간의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대화를 조정하며, 끊임없이 ‘이해’보다는 ‘해석’을 반복한다.

이때 커뮤니케이션 조정 이론(CAT, Gallois 등)에서 말하는 ‘수렴(convergence)’과 ‘발산(divergence)’이 함께 작동한다.
AI는 때로 인간의 언어 스타일을 따라가고, 때로는 차이를 유지하면서 의미의 간극을 관리한다.
즉, 인간–AI 대화의 핵심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라, 오해를 수정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해석의 과정이다.

 


소시오메터 : 자존감을 측정하는 사회적 센서

 

AI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는 결국 ‘감정의 데이터화’로 이어진다.
이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소시오미터(Sociometer)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소시오미터’는 ‘사회적 관계(social)’와 ‘측정기(meter)’의 합성어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는 이를 통해
자존감을 단순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 정도를 감지하는 내면의 심리적 계기”로 설명했다.
즉, 자존감은 고정된 자아의 가치가 아니라, 타인에게 얼마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소속감을 느끼는지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사회적 센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이후 MIT의 소시오미터 웨어러블 기기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기기는 발화 패턴, 억양, 시선, 거리, 몸짓 등 비언어적 신호를 데이터로 수집해 팀 내 감정적 관계와 협업의 역학을 분석한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호를 언어처럼 해석하는” 증강 커뮤니케이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AI가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읽고 반응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이 ‘사회적 신호의 계량화’에 있다.
이제 감정은 더 이상 주관적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로 기록되고 피드백되는 관계적 언어로 변하고 있다.

 


자기-추적(Self-tracking)과 데이터 자아

 

이와 연결되는 개념이 바로 자기-추적(Self-tracking)이다.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우리는 매일 자신의 감정, 수면, 움직임을 데이터로 저장한다.
이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데이터가 나를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데이터의 주체는 개인이지만, 실질적 통제권은 플랫폼 기업에 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관리한다고 믿지만, 데이터가 우리를 객체화된 자아(Self-data)로 만들어간다.
AI 커뮤니케이션은 이처럼
‘인간이 기술을 해석하는 과정’이자
‘기술이 인간을 측정하는 과정’으로 작동한다.


이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데이터 조율의 커뮤니케이션으로

 

AI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정보 전달’ → ‘의미 해석’ → ‘데이터 조율’의 단계로 확장되고 있다.
AI는 인간과 감정을 주고받는 대화자이자, 인간을 데이터로 읽는 관찰자다.

우리는 AI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인식을 확장하지만, 동시에 데이터에 의해 재정의된다.

결국, AI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이해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측정과 조율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본질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하고 번역하며 공존을 시도하는 것이다.